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아프리카 전역 (문단 편집) ===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탈리아군의 문제점]] === || [[파일:8e00439u.jpg|width=100%]] {{{#000 연설하는 베니토 무솔리니}}} || 사실 [[무솔리니]]가 큰 소리를 뻥뻥 치긴 했으나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의 장비 상황을 봐서는 아무리 2선급 전선이라고 해도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군과 지중해 함대와 맞짱을 떠서 일방적으로 관광태울 가능성이 희박했다. 실제 이탈리아군의 [[M11/39|전차]], [[Cannone da 105/28|대포]], [[카르카노|제식소총]], [[브레다 M30|기관총]] 등은 대부분 [[제1차 세계 대전]] 말기 및 전간기에 생산된 고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소화기의 경우 영국군의 리엔필드나 웨블리 리볼버, 빅커스 중기관총도 1차 대전 이전부터 쓰던 물건이다.] 나름대로 군의 현대화에 노력을 퍼붓고 있었으나 애초에 경제력이 딸렸으며, 그나마 온갖 [[삽질]]을 터뜨리며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었고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이탈리아의 국력은 '''일본 제국'''에게도 밀렸다. 병사들의 충성도는 물론 기술력도 그다지 일본에게 우월하지 못했고[* 물론 전간기만 하더라도 항공기술을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였지만 산업능력의 문제로 그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국사무쌍의 명장들과 전무후무할 영웅[* [[존 바실론]]이나 [[미하엘 비트만]], [[바실리 자이체프]], [[더글러스 베이더]] 같은 유명한 영웅들 외에도 이름이 기록되지는 못했지만 주목할만한 전공을 세운 전사들도 무척 많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홀로 PPsh-41과 모신나강을 들고 시가지에 침투해 소련군 저격수 12명을 사살하고 적 전차부대를 대전차포 사선으로 유인해 격퇴한 뒤 유유히 빠져나온 국방군 상병, 부상병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M1919 기관총으로 몰려오는 일본군에 저항하다 전사한 미군 군의관, 일본군에게 잡혀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어찌어찌 기사회생해 수십 km를 쉬지 않고 달려 일본군의 상륙을 알린 호주군 병사의 사례가 있다.]들이 전장을 누비던 2차대전기 치고는 전황을 뒤집을 만한 인재도 매우 없었다. 하다못해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인적, 물적 자원을 쥐락펴락 통제할 수 있었고 [[야마토급 전함]]을 3척이나 찍어내고, 제로센이나 하야부사도 전투수행이 가능한 수준으로는 생산해냈다. 독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그''' 미국이 [[몰락 작전]] 정도는 계획해 줘야 제압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될 정도로 분투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영국, 프랑스는 커녕 체코,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영세국가들에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무솔리니는 자신의 이탈리아가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과 맞먹는 강한 힘을 가진 국가로 착각하고 있었으며, 온갖 망상에 빠져서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 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덤으로 이탈리아가 1930년대에 로마 제국 부활을 내세우며 아프리카 국가인 [[에티오피아]]로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쳐들어가면서]] 벌인 학살과 현지인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상당히 고전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이탈리아군이 불리했음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때의 원한을 잊지 못하던 현지인들은 이탈리아군의 적인 연합군을 더 돕게 되었다. 그나마 이탈리아군 지휘관들은 나름대로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기에 무솔리니의 무리한 원정계획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솔리니는 곧 양산되는 최신예 병기의 보급과 정예병력 지원을 약속하며 지휘관들을 독려하였고 [[로돌포 그라치아니]] [[원수(계급)|원수]]를 북아프리카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이탈리아령 [[리비아]]로 파견하였다. 하지만 약속한 최신예 병기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배송되지도 않았고 그라치아니 원수는 "그거 주기 전까진 전쟁 못함"이라 주장하며 형식적인 훈련에만 매진하면서 --근데 훈련을 어떻게 시킨 것이냐-- 대놓고 [[사보타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주옥과도 같은 광활한 사막 지역에 파견된 이탈리아 병사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었고 하루 빨리 본토나 좀 더 편한 전선으로 배치되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이탈리아 공군을 책임지던 [[이탈로 발보]] 공군원수가 정찰나갔다가 대공포에 맞아 팀킬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만다. 결국 영국이 독일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이탈리아군이 이런저런 핑계로 밍기적대고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 주둔 영국군은 충분히 이탈리아군의 공세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게다가 같은 추축국 동맹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돌출행동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어서 확실히 선을 그으려 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 전역에서도 남부 쪽에서 깔짝거리긴 했는데 별 도움도 안됐고 프랑스군에게 고전하다 밀려난 상황이었다.~~???: 무솔리니의 공격은 프랑스 산악사단에 막힙니다.~~애초에 독일은 이탈리아에 대해 전쟁에 꼭 필요한 동지가 아닌 그냥 남유럽쪽에서 연합군이 맘대로 활개치지 못하게 해주면 선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영국 본토 항공전]]을 앞두고 정치적인 의미에서 이탈리아가 지원군을 파견했을 때도 이를 오히려 불편하게 여겼다. 나중에 워낙 북아프리카쪽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병력을 파견했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